# 언제 무엇을 어떻게
스페이스 미음(이하 미음)은 2022년, 전 세계 각 도시의 비영리 예술공간(단체)을 잇는 야심찬 “지역 권력 평준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제는 “장소 특정적 관점(site-specific perspective)”, 일명 SSP 프로젝트. 서구와 대도시 중심의 예술담론, 권력에 의심을 품고 각 지역의 예술 가치를 인정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타 지역의 예술공간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한다는 취지다. 미음은 4월부터 전 세계 실험적인 비영리공간을 찾아 온라인으로 연락을 취하고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했다. 이에 최종적으로
Absence space (부존재공간 타이난, 대만), Yong-fu No. 5 (탐수이, 대만), ZingVDO (방콕, 태국), Labsa(도르트문트, 독일), Ars Colloquium(센다이, 일본), Bayt AlMamzar(두바이, 아랍 에미레이트) 에서 최종 참여를 결정했다. 각 공간에서 주로 다루는 매체는 다르지만, 실험정신, 커뮤니티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자신이 운영하는 공간(단체)을 소개하고, 프로젝트 형식과 내용을 공유했다. 모든 논의 과정은 오픈 플랫폼 ‘미로(miro)’에 기록되었으며 추후 이를 담은 온라인 전시 도록을 제작·공유한다는 방침이다. 각 공간은 릴레이로 전시를 열되 매체는 영상으로 한정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애초에 물리적인 접촉 없이 이루어지는 소통이니, 비물질적인 영상은 이 프로젝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도 하거니와 추후 작품을 교환해 전시하거나 실시간 교류 자체를 작품화하기에도 용이한 포맷이다. 장르는 물론 자유. 각자 전시할 영상은 웹하드에서 서로 확인할 수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작가 이름이 비공개다. 작가의 이름에 따른 선입견을 배제하고 작품 자체를 온전히 감상해보자는 취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참여 작가에 대해 모두 함께 과장광고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이름에 목을 매는 미술 시장에 어퍼컷을 날리는 모양새는 아니었을까 잠깐 생각해본다(외국작가가 한국에 소개될 때 보통 “너희들은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잘 모르지” 느낌을 풍기며 “한국 최초 개인전”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각 공간이 선정한 작품은 웹하드에 속속 모였고 12월, 미음은 작가 이름을 뺀 영상 두 점으로 릴레이 전시의 시작을 열었다.
## 왜
팬데믹 이후 전 지구적으로 온라인 네트워킹은 더 공고해졌다. 온라인 비대면으로 거의 모든 일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이동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는 건, 공간 점유에 의한 권력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더구나 동시대미술 언어는 이미 전 지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고 해외 작가 및 기획자와의 수평적인 교류 또한 흔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스페이스 미음이 왜 이런 험한 길을 가고 있느냐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지역 권력 평준화”라는 다소 ‘운동’스러운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이미 본 전시나 알고 있는 작가의 아카이브를 확인해 기획에 맞는 작가를 초대하거나 작품 의뢰를 하는 것으로도 지역 간 교류는 이루어질 텐데 왜 서로 간에 잘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고 전시 및 작품의 형식과 내용까지 협의를 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울산이라는 지역의 예술지형―동시대미술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디어 중심의 공립미술관이 막 들어선, 국가정원을 위해 우리나라 식생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을 데려오기도 하는―을 맞닥뜨리게 된다. 남한 공업도시에서 동시대미술 물을 먹은 비영리 예술공간 운영자가 어쩌면 아주 쉬울 계몽주의적 ‘이벤트’―유명 작가와 작품 모셔오기 같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는 동시대미술이 수평적인 교류를 만들어가는 상황 자체를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명인사 작품을 공간에 가져다 놓지 않아도, 완벽히 짜여진 공간이나 상황, 유명 예술가가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대중이 가진 알고리즘은 아직 SSP에 다가가기에 매우 빈곤하지만 프로젝트 구상과 개시, 그리고 참여공간들과의 만남만으로도 “작가와 지역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각 지역과 공간, 작가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고 그곳만의 가치에 대해 공감”한다는 목표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자율적으로 하는 예술. 미음과 참여공간들은 아무런 제약 없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과 가치를 더 공고히 하고, 단단한 풀뿌리 같은 네트워크를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박성덕 대표가 지역 권력을 평준화하는 방법이다. “OFF THE GROUND”는 2022 SSP의 제목.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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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안개 속에 싸여있는 듯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수락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 생애 홍보는 포기했다”는 박성덕 대표의 한 마디 말과, “지역 권력 평준화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 어떻게 보면 모든 “네트워크”, 말하자면 인맥이라는 것은 홍보의 기본이다.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과 일을 도모하면 행사나 프로젝트 자체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고, 사람들도 더 모이게 만들 테니, 함께 할 사람의 능력은 물론 사회적 영향력도 중요한 법이다. 그래서 미술계든 정치계든 연예인 친구가 중요하다. 그러니, ‘아싸’인 나보다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스페이스 미음의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스페이스 미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 의견을 박성덕 대표에게 전달했는데 어차피 이번 생애 홍보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편중된 권력의 블랙홀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려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에게 “인싸” 인사(人事)를 권유하는 건 애초에 이치에 맞는 일도 아니었다. 박성덕 대표는 정말로 어떤 ‘영리’도 따지지 않고, 아주 비영리적인 잉여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이 제안을 받을 때 쯤 내가 인구 감소와 지역의 재생공간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도 내 나름대로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지한 유휴건물 등을 재생해 만든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관계 인구가 형성된다면 지역은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그런 와중에 “지역 권력 평준화 프로젝트”라니. 지방자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바에는 모든 인구를 수도권으로 옮기고 지방에는 공장과 농장(축사), 쓰레기장과 소작장과 발전소만 남기자는 다소 급진적이고 거친 나의 역설적 기조를 왠지 여기에는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어느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는 나는 저 멀리 떨어진 울산으로부터 온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프로젝트 ‘홍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언정, 작은 존재들이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일지도 모르니까. 이것은 그의 안부인사에 대한 화답이다.
배우리 | 월간미술 기자 (Bae Uri | Monthly Art Magazine Editor, Seoul)